9살 인생
우리 첫째 꿀벌이가 9살 둘째 말벌이가 5살, 나도 엄마로서 9살.
요즘 문득 아이가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둘째가 감기로 시작해 환절기라 그런지 여러 바이러스들을 거치며 많이 아팠는데 아이를 재우다가..
낮엔 서로 바빠 자기 전에 아이들과 잠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데..
"자장자장.. 우리 말벌이.. 아프지 말자 말벌아, 아픈 거 다 엄마주고 너는 얼른 나아."
말벌이가 힘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그 말에 씨익 웃으며 눈을 감고 잠에 들려하는 순간...
갑자기 꿀벌이가 슬픈 목소리로
"엄마........"
"응?"
"근데 말벌이 아픈거 엄마가 가져가면 엄마가 아프잖아.. 난 엄마 아픈거 싫어요."
'아....... 내가 미처 너의 마음까지 살피지는 못했구나.. '
엄마가 된다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엄마가 된 나는 나의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을 많이 떠올리는데, 엄마를 생각하면 고맙지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내가 엄마처럼 살 수 있는지 생각하면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에게 엄마라는 역할이 하나 더 생긴 것일 뿐, 내가 엄마가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기에...
나 역시 우리 엄마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엄마의 모습으로 내가 살아냈을 때 나의 꿀벌이, 말벌이가 나를 보며 고맙고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건 싫다. 특히 엄마가 '너는 나처럼 살지마라, 꽃 같이 예쁘게 피어라." 라고 할 때면 속상하기 그지 없다. 그 속상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주고싶지 않았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저 엄마는 엄마로서 행복한 사람이었고, 자신들도 그 안에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다고 느꼈으면 한다.
나는 우리 집에서 돌연변이로 불릴 정도로 부모님이 보기에는 특이한 아이고 기질이 강한 아이여서 나를 키우는데 힘드셨다..라고 하는데, 나와 똑닮은 말벌이를 볼 때면, 나는 나도 행복하고 말벌이도 행복한 육아를 하고 싶었다. 또 또래에 비해 순딩이인 꿀벌이를 볼 때면, 어떻게 이 아이의 기질을 살려 이 아이가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까가 엄마라는 역할이 하나 더 붙은 이후 나의 고민이 되었다.
학교 상담이 있던 날,
오늘은 꿀벌이 담임선생님과 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전화상담을 신청했고, 선생님은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꿀벌이는 속이 참 깊은 아이 같아요. 집에서 생활은 어떤가요? 학교이야기는 많이하나요?"
"아... 꿀벌이는 학교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물어보면 항상 즐거웠다고 하고, 요즘 좋아하는 만화책은 그리스로마신화래요. 그 이야기를 많이해요. "
"사실 꿀벌이 뒷자리에 새로 전학온 아이가 앉았어요. 그 친구에게 어찌나 상냥하게 대해줬는지, 그 전학 온 아이 아빠가 선물도 보냈는데, 그 이야기는 하던가요?"
"아니요.. 사실 제가 일도 많고 출장이 많아서.. 꿀벌이와 대화시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못들었나봐요.."
"아... 그러셨군요, 그리고 옆에 사실 도움이 많이 필요한 친구가 앉아요. 친구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아이에요. 며칠 지났을 즈음 꿀벌이도 불편했는지 자리를 바꾸어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1주일 지나면 모두 바꾸는 시기이니 책상을 조금 띄어 지내보고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니? 하고 물어보자 그러겠다고 하고는 잘 기다려 주었어요. 불편했을 법도 한데 아이가 친구에게 티를 내지는 않았어요. "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은 없는데, 그랬군요..선생님 덕분에 아이 학교 생활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가 꿀벌이 아기때부터 일을 계속 해와서.. 꿀벌이에게 늘 잘 챙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꿀벌이는 참 어른스러운 아이에요. 어머님이 그런 부분은 정말 걱정 안하셔도 될만큼 꿀벌이는 수업태도나 친구관계 모두 좋아요.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꿀벌이는 사실 조용한 성향의 아이라 신체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기 보다는 만화책이지만 책을 좋아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성향인데, 어쩌면 학교에서 있는 이야기를 모두 내게 하기에는 나를 배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말벌이가 많이 아파 예약을 하지 못한 채 병원에 갔는데 장장 2시간이라는 대기시간이 있었다. 그 때에도 꿀벌이는 본인도 힘들었을법한데..
"꿀벌이 심심하지, 병원밖에 나갔다 올까?"
"아니요. 나는 괜찮아요. 말벌이 순서 되면 선생님 봐야죠." 그러더니 내게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며
"엄마, 안마해 드릴게요"
3초후... 아 팔아파!
"꿀벌아, 팔 힘 키워야겠어. 너무 짧은데? ㅎㅎ "
그렇게 웃다 긴 대기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꿀벌이는 나를 살핀다. "엄마는요? 엄마는 어땠어요? 엄마는 괜찮아요?" 내가 워킹맘이라 아이에게 늘 물었던 '너의 오늘은 어땠어? 기분은 어때? 너는 괜찮아?' 라고 물었던 게 아이에게 이런 마음을 준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직 아이다웠으면 좋겠는데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미안한 마음이 함께 든다. 9살인데, 인생 3회차 같은 꿀벌이..
'내가 주는 사랑'과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은 다를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과 의견차이가 많아 자주 부딪히는 편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것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때의 난 사랑보다는 질책으로 느껴졌기에 건강한 방법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주는 사랑을 아이들도 사랑으로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아이들을 믿는다. 나의 아이들이 선택을 잘 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할 것을..
이제 엄마나이 9살. 나를 돌아보며 아이를 본다. 나의 선택이, 그리고 나의 삶의 방식이 아이들의 마음의 씨앗으로 자라나길.
그리고 그 씨앗이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닌 자기자신을 잘 살피는 어른으로 건강한 성장을 이루어내기를...
모든 아이는 부모가 들려주는 언어의 정원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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