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리 바빴던 것이었을까.. 거의 2개월만에 글을 쓴다.
루틴을 놓치고 보니 일상에서 짧은 틈을 내는 것 조차 어려워졌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의 러닝 기록을 남겨봐야지
트레일러닝 "더 멀리, 더 깊게"
육체적 고통의 끝을 맛볼 수 있는 러닝 종목 중 하나. 그것을 뽑자면 아마 트레일러닝이 아닐까 싶다. 로드런을 하던 사람들이 더이상 로드런이 지루하고 심심해질 즈음, 런태기를 겪으며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다 만나는 그것. 그것이 바로 트레일러닝이 아닐까 싶다.
트레일러닝은 포장된 아스팔트가 아닌 숲길, 모래길, 자갈길 등... 다양한 환경에서 오랜시간 달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내가 느끼는 트레일러닝은 조금 더 자연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등산도 좋아하고 달리기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처음 러닝팀에 가입하고 사람들이 달리기 뿐만 아니라 트라이애슬론 종목 즉 수영과 사이클링을 함께 하는 사람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안의 크루 중에는 울트라마라톤(산악마라톤) 국가대표 분도 계셨으니.. 뭐 말 다 한 것 아니겠는가. 풀마라톤이 첫 도전이어서 러닝팀에 가입한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이미 산악으로 따지자면 화대종주, 그리고 트레일러닝으로 말하자면 거제지맥, UTMB, 50km, 100km 때론 200km가 넘는 긴 구간의 무지막지한 트레일러닝에도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말이 그렇지 산 속에서 등산과 비슷한 것을 내가 마라톤을 뛰는 속도보다 빠르게 뛰는 그들은 내 시각에선 도깨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주변을 살펴보면, 내가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 낄 때면 나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아주 여린,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 불과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과해... 음...... 과해 과해..."
달리기를 하다 보면 겸허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숨이 턱끝까지 차고, 힘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어느 시점에건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고통으로 인지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다. 고통이 쾌락?! 과도 닮았다면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공부, 일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놀이이자 유희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트레일러닝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트레일러닝의 시작에 대해서는 여러 '썰'이 있다. 그 중 유명한 이야기는 캘리포니아 샌프란 딥시 레이스 이다. 1905년 몇몇 미국의 러너들은 캘리포니아의 한 해변에 딥시 호텔이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산을 너머 누가 가장 빨리 호텔에 도착할 것인지를 두고 내기를 한다. 단순 베팅으로 시작된 달리기였지만, 그들은 즐거웠고 다음해 부터는 그들이 뛰었던 길을 본떠 크로스컨트리 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산악지대를 갖춘 타말파이어스 산, 수십 수백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장거리, 지형에 따라 선수 스스로 길을 선택하는 딥시레이스는 분명 크로스컨트리와는 다르다. 크로스컨트리가 전통적인 겨울 농경스포츠로 마을 울타리나 도랑을 넘는 일종의 장애물 레이스라면 이것은 분명 다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트레일러닝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그나마 비슷한 크로스컨트리로 불렸다는 썰이다.
다른 '썰'로는 수백년 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인기를 끌던 펠 러닝이 트레일러닝의 역사라고도 한다. 펠 러닝은 20마일의 산길을 따라 달리는 스포츠로 호수, 고지대, 오프로드 등 험한 길을 주로 달리는데 마찬가지로 지정된 코스없이 스스로 경로를 설정한다. 크로스컨트리, 펠러닝, 트레일러닝은 세부적인 룰이 다를 뿐 크게보면 아주 비슷하다. 그 때문에 언제 트레일러닝이 시작되었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두 발로 걸음마를 시작하고 걷고 달린다. 포장도로에서 비포장도로로, 그리고 산을 오르고, 험한 지형과 궂은 날씨를 이겨내며 도전한다. 어쩌면 인간의 타고난 본능과도 같이...
나는 달리기에 대해 잘 몰랐다. 심지어 마라톤을 시작한지도 겨우 2년. 알고 볼수록 좋은의미에서의 대단한 괴물같은 인간들이 많고 한국 트레일러닝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유지성이나 김지섭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곤한다. 마라톤도 세계 인증 마라톤에 속하는 대회들이 있듯 국제 공인 인증을 획득한 트레일 러닝 대회는 50km를 시작으로 DMZ트레일러닝, 트렌스 제주, 서울 100k 등 이제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대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런 대회들은 물론 나에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내가 운동을 처음 시작하던 우리 집 앞, 현충원에서 트레일러닝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등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대회. 집앞에서 열린다고?
관심을 갖으면 그것이 보인다고 했던가. 그 전에는 이런 것들이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러닝에 빠지고 보니 이런 대회가 눈에 들어오고 관심이 간다. 그리고 이 대회에 등록이 되어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ㅎ 등록을 할 때 내 마음은 이랬다. 집 앞이었기 때문에 현충원 둘레길은 자주 탔던 곳이었고, 10km 정도 되는 길인 것을 알고 있었고, 수통골 등산 코스도 나의 최애 까지는 아니어도 최대로 많이 갔던 등산로였기 때문에 대략 10km 정도 된다고 알고 있었고, 트레일러닝 맵을 처음 보았을 때는 종주와 둘레길을 합친 24km 가 달리는 길이겠구나.. 하고 신청을 했는데, 아주 보기좋게 나의 예상은 100% 빗나갔다.
대회 1주일 전, 아무리 집앞이지만 가보지 않은 길이길래 길을 갔다. 아.......... 너무, 너무, 너무너무너무 힘든 것이다... 아무래도 7시간 30분 제한시간에 못들어오는 것을 떠나 반도 제대로 마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회 취소를 하려고 보았더니 전 날 까지였단다. 달리기에 빠져 등산을 소홀히 한 나의 실수였던 것이다. "그래.. 이것은 그냥 훈련삼아 산을 타라는 신의 계시인거지.." 뭐 끝까지 못하면 어떠한가,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 하는거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은 익히 나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니던가,
그렇게 해 뜨는 대회 날 아침, 출발시간 1시간 전인 6시 30분까지 오라는 문자에 새벽일찍 서둘러 갔다. 집 앞이긴 해도 대회가 끝나면 걷기 너무 싫을 나를 알기에 차를 가지고 이동했다. 이미 많은 선수들이 주차장에 있었고 나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나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7시가 넘고 해가 떠오르자, 기온이 급 상승하기 시작한다.
후원을 한 대전가스공사 등을 비롯한 곳에서는 판박이 이벤트, 선물 나눔 이벤트 등등이 펼쳐졌다.
그리고 7시 30분, 정겨운?! 징소리와 함께 출발을 한다.
초반부터 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 어차피 산 오르기 시작하면 다들 쳐질텐데.... 라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나만 쳐진 것 같다. ㅎ
"모두 화잇팅!"
나는 결국 반 지저메서 DNF 를 했다. DNF 는 Did Not Finished 의 약자로 끝까지 완주 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데 내가 웃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정한 운동량을 채웠고 행복한 마음으로 마칠 수 있어서였다.
부끄러워서 결승선을 통과하지 않으려 했는데, 선배 크루님이 이런 날도 기록은 남기는 것이라며 감사하게도 사진을 찍어주셨다.
언젠가는 정말 대회에서 이렇게 웃으며 들어오는 날도 있겠지.. Cut off 없이 DNF 하지 않고!
이 날 내가 선택한 트레일러닝화는 호카의 스피드고트였다. 나의 산양이...
이 날 받은 기념품과 간식들이다. 정말 혜자로운 대회였다. 트레일러닝조끼, 리엔케이 클렌징폼, 선풍기, 팔토시, 스포츠타월, 그리고 간식까지... 아주 풍성했다. 대회 참가비는 좋은 곳에 쓰이고 이 것은 모두 후원 받은 물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폭염특보가 있던 토요일, 이런 대회를 참가한다는 것 자체로 이상해보일 수 있지만, 정말 뿌듯한 하루였다. 그리고 행복한 DNF를 할 수 있다는 것. 다치지 않고 내가 정한 목표를 채워내는 것, 에너지가 Fully 소진되기 전에 DNF를 결정해서 다음 날 못 간 반을 탐험할 수 있었던 것, 그 모두를 배울 수 있던 대회였다. 무엇이든 목표를 가지고 해야한다는 분들도 있지만,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자신이 결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힘은 들었지만, 몸과 마음은 한 결 강해진 상태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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