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을 키우려면 근력운동을 해야하듯,
마음도 단단하게 다지려면 '마음운동(생각)'이 필요하다
구간 : 1일차 : 죽령휴게소 - 제2연화봉대피소 (4.5km 임도길)
2일차 : 제2연화봉대피소 - 연화봉 - 제1연화봉 - 비로봉 - 제1연화봉 - 연화봉 - 제2연화봉 - 죽령 (19.5km)
"산에 가볼까.."
유독 길고 덥고 습한 여름이 이어지는 요즘.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달력을 보니 입추가 지나고 있고, 아직 3복더위라 하는 중복-말복 사이의 날이었다. 한 여름에 산을 간다는 건 미친짓일까..
그런데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내가 힘들어할 모든 것들에 나를 내어놓고 싶은 그런 날.
주로 마음이 힘들면 몸을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그렇게 한껏 움직이고 나면 몸이 괴로워 다른 것들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갑자기 '산'에 꽂혀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일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 해에는 어떤 '에너지'라는 것이 있어서 아침 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일몰도 보고, 일출도 보고싶은데...
지리산을 갈까.. 했는데 이런, 비가 올 확률이 60% 이다. 게다가.. 그 다음 날도 오전 오후 모두 60%..?! '이건 좀.....' 그렇게 다른 곳을 찾다가 '소백산'이 눈에 들어왔다. 네비를 보니 차로 그곳까지 2시간 30분정도.. 중간 중간 몸을 펴줘야 하는 상태(허리 디스크 수술 4개월 차..)라 넉넉잡고 3시간.
음... 수술 전의 나라면 새벽에 출발해 당일산행을 선택했을 것인데, 이번엔 달랐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대피소'라는 옵션을 선택했다. 그렇게 작은 침낭과 작은 버너, 먹을 것, 여벌 옷을 챙겨 가볍게 나서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산갈 때 주로 살로몬 조끼로 운행하는 나로서는 38L 백팩이 가벼울 리 없었다. 오후 느즈막히 시작한 산행에 백팩의 무게감이란...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럼 대피소까지만 백팩을 지고 올라가고, 다음 날은 가볍게 비로봉에 다녀오기로!
'정.. 힘들면 가는데까지 가서 돌아오지 뭐.. '
'혼자 할 수 있을까...'
'더운데 땀흘리고 못씻는다는 건... 어쩌나.... '
하는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죽령 휴게소에 도착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참고로 국립공원의 경우 입산 제한이 있는데, 대피소를 예약한 경우에는 유예시간을 준다. 소백산은 하절기 기준 2시까지 입산이었다. 등산로에 접어들자 매미 소리만 '맴맴...' 울고 있었다.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달리기에 빠진 이후 산은 뒷전아닌 뒷전이 되었었는데, 다시오니 역시 산도 좋았다. 임도길은 지루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임도를 오르고 올라 대피소가 나타났다. 반가웠다. 무엇보다 땀에 입고 온 옷이 젖었기에 '오늘걷는건 여기까지' 라는 생각에 더욱 그러했다. 얼른 갈아입고 싶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짐을 지고 '이 여름에 산을 오다니, 내가 미쳤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시작한 것, 땀흘릴 거 예상 못한 것도 아니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생애 첫 대피소 문을 그렇게 넘었다. 어리버리... "안녕하세요, 저 오늘 1박 예약했는데요." 대피소 직원분은 친절하게 안내해주셨다.
"오늘 예약하신 분이 몇 분 안계세요. 이 쪽 모두 사용하셔도 됩니다. " 대피소 내부는 깨끗했다. 넓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화장실은 무려 수세식에 졸졸 이지만 물도 나오고... 감사한 일이었다. 샤워티슈를 꺼내 온 몸을 한 번 훑어주고, 졸졸 나오는 물로 얼굴을 살짝 적시니 상쾌했다.
젖은 옷은 햇볕에 말리고 배가고팠던 나는 취사실로 향했다. 산은 당일산행 위주만 다녔던지라 이렇다할 장비가 없어 전날 구매한 작은 버너와 마라톤대회 뛸 때 받았던 '제로그램 라면팬'이 내 주방장비의 모든 것이었다. 게다가 처음 보는'이소가스'는 이곳에 올때까지 도시에서 구하지 못해 걱정이었는데 대피소에서 구매하고 처음 불을 켤 수 있었다. 가스를 못구할 경우를 대비해 선택한 고기는 '훈제오리고기'였다. 대피소에 전자렌지가 있다고 하길래 가스 못구하면 데워먹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바깥 데크를 걷는데... 순간 그 조용한 적막감이 가져다주는 평온함이란... 이건 뭐.. 거의 개인 별장 수준 이잖아... ㅋ 올라서서 보니 올라온 길이 보였다. 아.름.답.게. ㅎ 기억은 늘 이렇게 미화된다. 내가 놓여진 곳이 나에게 좋다면 말이다.
일몰 예정시간은 7:30, 하지만 구름이 끼면서 일몰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 구름 낀 조용한 경치마저도 그저 좋았다. 그렇게 저녁즈음이 되자 산객 몇몇 분이 대피소로 오셨고 대피소는 21:00에 소등되어 조용히 잠들었다. 딱딱한 바닥과 낯선 환경이 부담스러워 12시까지는 잠을 못들다가 어느순간 나도 잠들었다.
이렇게 더운 날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은 기우였다. 나는 긴팔옷에 바람막이 잠바, 그리고 침낭속에 애벌레처럼 들어가 잠들었다. 펄펄 끓는 아래동네와 달리 자연으로 이렇게 시원할 수 있다니...
비로봉 가는 길
새벽에 일어나는 루틴을 가지고 있다보니 알람이 없어도 눈이 떠진다. 다른 분들이 계시니 알람을 꺼두었는데, 모두 나보다 더 먼저 일어나 움직이셨다. 나도 5시 20분 즘 눈을 떴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깬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시 데크로 나가 일출을 보는데... 붉은 여명과 함께 떠오르는 해를 보는 건 그저 감동이었다.
그렇게 대피소에서 새벽 6시 즘 일출을 보고 백팩은 놓아둔채로, 산행을 시작했다. 가져간 옷은 긴 레깅스와 쇼츠였는데, 기온을 보니 땀이 많은 나는 쇼츠를 입어도 되겠다 싶었다. 거의 모든 구간에서 쇼츠를 선택하길 잘했다 싶었지만, 등산로가 아주 좁은 몇몇 구간에서는 풀숲에 약간 다리를 긁히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선택하라면 다시 쇼츠를 선택할 거 같다.
땀이 너무 많이 났기 때문이다. 옷을 짜가며 등산했다. 산을 탈 땐 기능성 의류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땀을 짜내면 금방 마르는 옷이 아니라면 옷이 너무 무거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화봉 대피소를 출발해 천문관측소를 지나게 되는데, 이 곳은 천문연구원 직원분들이 상주해계시는 것 같다. 이곳까지는 거의 임도 구간인데, 그런 이유가 출퇴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겠구나.. 싶었다.
조용히 비로봉을 향해갔다. 트레일러닝을 하는 분들 몇몇이 나를 지나쳐 가시고, 능선을 따라 걷는 동안 이 곳이 트레일러닝 연습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에 천천히 걸었지만, 나중에 몸이 완전 회복된다면 트레일러닝도 시도해보고 싶다.
https://youtu.be/a5_Clh-0RPI?si=C7JJdhBKICjCgp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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